이념은 죽었는가? : 상식 혹은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회의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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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불님은 이번 촛불집회를 이념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말씀하시며, 낡은 이념의 이분법을 버리면 넓은 시각이 열릴 거라고 하셨다. 물론 그 취지를 내 나름대로는 이해할 수 있다(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어떤 글을 봤을 때 원 글의 의도를 정확하게 짚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다). 복잡하게 꼬거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필요 없이, 단순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바라보자는 말씀이실 게다. 그러나 난 여기서 함정을 봤다.
  
 상식이란 말의 정의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
비슷한 말 : 보통지식.
예문:
상식이 없다
상식 밖의 행동
상식에 어긋나다
...
..
.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는 무얼 근거로 그렇게 여기는 것이며, 과연 보편타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형벌을 규정했으며 그것도 실은 계급에 따라 달리 적용되었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고대 가나안에는 자기 자식을 태워죽이는 몰록 신앙이 존재했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아테네에서 민주정을 누리던 시민 계급 뒤에는 그들의 생활을 떠받치는 노예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로마 시민들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싸움을 구경하고 기독교도들을 사자밥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중세 교회는 성경에도 없는 천동설을 믿었으며 십자군 운동을 벌이고 교회 개혁자들을 죽였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미국 독립전쟁을 이끈 지도자 중 상당수가 노예를 소유했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청대까지만 해도 한족 여자는 전족을 해야 했다. 황제가 금지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히틀러와 그의 국민들은 유태인과 집시를 마땅히 쓸어버려야 할 것들로 여겼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겼다.
  미국은 스스로를 세계 경찰이라 말하면서 정작 하는 짓은 패권국가의 그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긴다.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민족의 태양으로 여기고 주체사상을 신봉한다. 그들은 그것을 상식이라 여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으며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는 이 수정자본주의 시스템도 언젠가 호되게 밟힐 날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것을 상식이라 여겨도.

  다시 말해서, 한 시대 및 어떤 집단에서 보편적으로 믿어지는 상식이란 것은 행동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시대와 지역, 처해 있는 환경 등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상황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뿐이다. 때론 재앙을 불러오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낡은 이념이라고 하셨는데, 물론 초록불님이 상정하고 있는 그 이념은 낡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근간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고 지금도 우리 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지배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의 싸움은 먼 옛날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정당의 경우도 민주당 정도가 좀 모호할 뿐 나머지들은 모두 진보나 보수를 표방하고 있다. 쇠고기 정국도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실 쇠고기 정국 뒤에는 반 이명박, 숭미, FTA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다분히 이념적인 요소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단지 서로 이해관계 및 중요시하는 문제가 동일하지 않고, 큰 맥락에 맞춰 한 목소리로 외치지 않을 뿐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어떤 이념 및 성향을 띄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 별로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이거야말로 이율배반이 아닌가. 사람인 이상 비록 변동은 있을지라도, 모두가 어떤 종류의 입장은 반드시 취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옳고 그름 및 이해득실을 각자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자기는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사실은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는' 편에 속해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또 다른 편에 속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림은 2차원스럽게 단순하지 않을 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념에 따라 자기가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극히 중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뉴라이트의 상식촛불시위대의 상식과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념이라는 게 없어질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 사회를 이루는 가운데에서 권력과 부는 사회 전체에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고 어느 한 계층이 독점하거나 최소한 더 많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더라도 모두가 평등한 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고, 심지어 평등을 표방한 공산사회조차도 당간부와 일반 인민의 권력과 생활수준은 천지차이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것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거나, 보완하거나, 엎어버릴 때도 그걸 주도하는 사람들과 어떤 이념이 늘 함께 했다. 단지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언젠가 기술이 이상하게 발전해서, 사람들 머릿속에 칩이라도 박아놓아서 각자 비슷한 즐거움을 누리고 비슷한 생활조건에서 살게 하고 거기에 만족할 수 있게 한다면 그제야 이념이란 것이 의미가 없어지겠지만 누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그 외에도 종교같이 인간이 결코 하나일 수 없게 하는 요소는 많이 있고, 정도가 바뀔 뿐 그런 것들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황당할 정도로 순진무구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뭐 믿는 바도 아니거니와.

그런 의미에서 아직 이념의 종말을 논하긴 이르다.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자료가 없어 이 글에 적절한 그림이 이것밖에 없었다. 뭐 최신의 자료도 아니고, 동의하지 않을 분들도 많겠지만(필자도 못마땅해 보이는 부분이 있음) 그냥 예시 정도로 보셨으면 한다.





여담. 저는 원색은 싫어도, 분명 회색보다는 파스텔톤이 좋습니다. 칙칙한 것보다는 울긋불긋 꽃밭같은 세상이 좋아요. 판단 기준도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보다는 종교 쪽에 더 가깝습니다. 혹시 누군가 이 글이 거북하시다면, 이러한 입장에서 썼다는 것을 참작하셨으면 합니다.


by Executrix | 2008/06/13 18:25 | 경악 | 트랙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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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아늑한 보금자리 at 2008/06/13 20:31

제목 : 이념이라고 우기기엔 너무 상식밖이지 않은가?
이념은 죽었는가? : 상식 혹은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회의 위의 링크를 따라가면 도표가 있다. 근데 이 그림이 정상적으로 보이는가? 이념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비상식적인 그림이다. 이런 논리지요. 이념주의로 이끄는 자들의 수법이 이런 방법으로 양비론을 이끌어 내는 거지요. 딴나라당이 보수에 가깝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말인가요? 매국/매족의 앞잡이들이 모여사는 극단적 이기주의/매춘정당이 보수......more

Commented by 쪼히 at 2008/06/13 23:39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주요정당이 보수쪽에 치우쳐진 사회구조는 참 안타깝네요.
어서 진보를 대변할 정당다운 정당이 성장해야 거리의 정치가 줄어들텐데요.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6/23 21:49
All // 이제야 짬이 생겨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답변이 늦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전 제 성향이 그럭저럭 좌파 쪽에 가깝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그쪽을 보자면 아직은 정권을 잡을 만한 역량이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특히 국방 관련을 보자면 심란하더라고요. 아니 역사적으로 봤을 때 좌파가 국방을 소홀히 한 경우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던데... 노무현 같은 경우는 중도우파 혹은 진정한 우익이라는 이야기도 듣는 분이라 논외로 치고요.
Commented by 하늘선물 at 2008/06/13 23:47
이념의 종말은 이미 탈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야기해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념논쟁을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탈냉전 시대 이후에 지식인들 사이 논쟁중 하나인 최장집 vs 월관조선 이였죠.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그 이념 갈등을 무색하게 할려고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를 했습니다. 그 이유중 하나가 IMF이구요.

그래서 등장한게 민족주의 고찰을 지식인들 사이에 벌어졌지만, 정작 이념은 그 민족주의를 서로 이용하기에 바빴고.....

결국 남은것은 자유주의를 고찰하여 이념의 종말을 고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자유주의 안에 슴겨져 있는 '평등'이란 단어가 '이주민'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였죠.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근현대사적 관점에서 보건데, 해방이후 부터 벌어졌던 이념이 언제까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해체주의'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방법은 '해체주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이념따위 조낸 해체하는 겁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6/23 21:54
전 이념 자체가 뚜렷하지 않게 변했을 뿐 결코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각자가 갖고 있는 이념이 무엇이건간에, 극단 세력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교적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배우고, 서로에 대해 눈을 뜨고, 귀를 열며 최소한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우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이건 세월이 약일 겁니다. 최소한 늙은 과격분자들은 알아서 소멸될 테니까요♡
Commented by 靑髥 at 2008/06/14 00:36
'이념'에 대한 시각의 차이라고 보입니다만. 이념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정의한다면, 어떤 구성원(또는 구성원 집단)이 '이것이 옳은 길이다'라고 주장하고 그 공동체에 영향력을 갖는 순간 이념이 될 겁니다.

Executrix님의 글은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이념이 공동체 다수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들이 그에 바탕한 가치판단을 오랜기간 계속해왔다면 그것은 '상식'으로 불릴 수 있을 겁니다.

Executrix님이 Trackback 해오신 글은 개개의 이념(흔히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을 지칭하면서 이에 대한 제3의 길을 제시해야할 필요성을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념을 넓은 정의(위의)로 본다면 역시 그것도 또 하나의 이념을 제창하게 됩니다. 그 점에서 이념에 대한 깊은 생각은 가치를 갖게 됩니다.

이미 기존의 이념적 갈등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vs. 공동체주의],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에서 종교, 성, 민족의 새로운 문제를 가져오고 있으니까요. 고민해야 할 이념의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자본주의(혹은 신자유주의) 하나로 이 모든것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에서 Executrix님의 견해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6/23 22:01
네, 대충 그런 식의 이야기입니다. 본문보다 해설이 더 명쾌해서 이거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트랙백한 원글에서 원하는 바대로 탈이념적인 세력이 주류를 이룬다 해도, 언젠가 혹은 동시에 그것과 입장을 달리하는 세력도 등장하겠지요. 결국 막대기 어디에 점을 찍었냐에 대한 문제인데 다만 거기에 더해서 그 막대기는 입체적으로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더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06/14 04:04
이념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진 않겠지요. 아니, 없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초록불님의 이야기는, 이번 촛불집회에 한정해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촛불집회에는 이념적 스펙트럼의 분포가 너무 넓거든요.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6/23 22:09
네.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은 시위대에 대해 어떤 세력들이 공격하는 논리도 이전 시대의 그 황당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세력들은 촛불시위대를 좌파빨갱이나 그 조종을 받는 괴뢰로 여기고 있고 그 주장하는 바도 촛불시위대가 원하는 바와 비교해 보면 우측에 있으니, 상대적으로 촛불시위대는 좌측에 있는 건 맞죠. 촛불시위대가 주장하는 민영화 반대, 쇠고기수입 반대 같은 것도 상대적으로 좌파 쪽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이념 자체보다 그것에 목숨을 걸고 한쪽 편만 드는 사람들에게 있는 거죠.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6/14 09:06
잘 보았습니다. 자그니님의 댓글이 제 견해와 비슷합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6/23 22:10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했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건도군 at 2008/06/21 02:30
초록불님의 글 보고 갸웃하다가 보고 들어왔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요즘 '중립'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념'이라는 말을 갖다붙이면 뭔가 위험하게 들리고, '정치'하면 꼭 '선량한 개인'은 정치적이면 안 될 것 같고... 그런 생각들도 분명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달리는 버스에 올라탄 사람이 '난 가만히 있어'라고 말한들, 모르는 새에 버스에 올라타게 되었든 자의로 버스위에 올라탔든... 그는 명백히 움직이고 있는 거죠.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6/23 22:19
이런 졸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전 진짜 문제는 이념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념이라는 단어에 어떠한 느낌이나 선입관 같은 것을 품고 바라보기 때문에 이념이 쓸데없이 욕을 먹고 있는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차피 다 갖고 있는 이념인데도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위 '중립'을 외치는 사람들이 간혹 쿨게이니 헛똑똑이니 하며 심하게 욕을 먹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로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쪽에 속했다고 여기지 않겠지만, 사실은 그 '중립'이라는 편에 속한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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