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에 대한 나의 회의 2

88만원 세대와 관련하여 자수성가라는 말에 의문을 품다에서 셀프 트랙백

저번 졸문에서 자수성가라는 말이 실제로는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장황한 단어 나열에 불과했을 뿐,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어야 머릿속으로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충하고자 한다. 

예전에 문제삼았던 글을 돌이켜보자.

'노력으로' 무엇인가 세개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뒤에는 그것을 보고 부러워하며 있는 '노력을 덜 한' 사람 둘이 있지요.

...
더 노력하고 더 뼈빠지게 일해도, 안되는건 안된다고 하셨지만,
살기 힘들다, 돈달라, 돈 더달라고 악을 쓰는 시간에 더 노력하면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잘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은 저번 글에서도 보았듯 노력을 하면 그만큼 잘 살 수 있다는 것이고, 노력하지 않았으니 못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 그 뒤를 따라온다.
이 편리한 사고방식을 그래프로 형상화하면 다음과 같다.

注 : 이 그림들은 현실의 빈부격차를 반영한 것이 아니며 임의로 넣은 숫자에 불과하다. 만약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면 격차는 훨씬 심하게 벌어질 것이다.


그림1 - 기본 상태




여기에서 모두가 노력한다면 이렇게 되거나 -
그림2




최소한 이 정도는 된다는 식이다.
그림3



그러나 이것들은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전제를 무시하고 있다. 바로, 저번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자원의 희소성'이 저 그래프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렇게 세상이 돌아가려면 자원이 무한해야 가능한데, 유감스럽게도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 각자는 자기 몫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것에 반비례하는 게 현실인데 저 그래프는 그것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머릿속의 그림을 좀 더 타당한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다음 그림을 보자.

그림4




그림1,2,3은 가진 자들의 이상 - 서로 이익이 충돌하지 않으며 노력하면 그만큼 성공할 수 있다 - 을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자원이 한정된 가운데 남의 밥그릇을 빼앗아 배를 불리는 진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림4이다. 각자의 부채꼴을 키우려면, 좋든 싫든 다른 부채꼴의 영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그림은 '파이'와 같은 개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이를 우선 키우느냐, 우선 공평하게 나누느냐. 가진 자들은 우선 파이를 키워놓고 보자고 말한다. 파이를 키워놓으면 그만큼 각자가 가져가는 분량이 늘어난다는 논리에서다.
파이를 키운다면 -
그림5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 그림과도 좀 달라서 파이가 커지면 커진 파이의 대부분은 가진 자들의 몫이고, 극히 일부만이 못가진 자들에게 조금 더 떨어질 뿐이니 결국 자기소유/전체의 비율은 더 떨어진다. 그리고 그걸 받는 사람들은 그것을 성공이라고 여기지 않고 공평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얼핏 봐서는 극히 이기적이고 분수를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가상승이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 등을 고려해보면 이해 못할 것은 결코 아니다.




저번 글에 달린 댓글에서,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이 온통 제로섬 게임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주장인데... 만약 그랬다면 인류는 여전히 원시 시대에 머물러 있었겠지요. 사회적 차원에서의 부의 축적이라는 것도 없었을테고.
...
파이가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의 제로섬 게임이란 말은 열린 계에서의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말만큼이나 작위적이고 말이 안되는 소리인 거 아시죠? 뭐 그러니까 파이를 키우자 이런 소릴 하려는 건 아닙니다.
...

파이는 그것을 키우자고 말하건 말건 어떤 식으로든 계속 커지고 있다.  경제성장, 국민소득의 증가 같은 것만 봐도 분명하다(비록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하는 국민들에게 기여도만큼 공평한 몫이 떨어지는가는 의문이지만).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여기는가? 말이 안 된다면 가진 자들이 말하는 '파이를 키우자' 라는 말부터 불가능한 일이며 그들은 죄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하긴 그러니까 '파이를 키우자 이런 소릴 하려는 건 아닙니다'라고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버린 것 같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벌써 망해버렸을지도 모른다. Working men of all countries, REJOICE!

다만 파이의 크기는 무한하지 않으며 매 순간순간마다 늘 한계가 존재한다. 사람의 욕망은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한계 안에서 자기 몫을 불리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것이 될 수도 있었던 뭔가를 선점하는 - 그래봤자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남의 것이 된다 - 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다.

자수성가라는 말은 이러한 수라인간적인 모습을 보기좋게 포장한 말에 불과하다. 그 말은 스스로 그림1,2,3처럼 서로의 소유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자기 손으로 다른 모두를 쓰러뜨리고 승리했다'라는 뜻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 말이 최소한 후자의 뜻으로 하는 말이길 빈다. 전자는 정말로 답이 없다.






P.S.1
그러고 보면 계속 늘어나지만 동시에 한계가 늘 존재하여 아귀다툼을 일으키는 파이 개념은 C&C타이베리움과도 비슷하다.



P.S.2
요즘 대선을 보면 몇몇 후보들이 경제를 살린다면서 국민성공시대같은 괴이한 단어를 남발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걸 보면 마치 자신이 집권하면 국민 모두가 갑자기 잘 살게 되거나(그림2), 최소한 모두가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 같다(그림3)

과연 그럴까?
그림4에 근거하여 나는 그것을 오병이어 놀이라고 부른다.

by Executrix | 2007/12/14 02:03 | 정치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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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nformation .. at 2007/12/20 12:09

제목 : 자수성가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
Trackbacked from : 자수성가에 대한 나의 회의 2위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깐 더 눈에 잘 보이게, 다음과 같은 간단한 산수 놀음을 해봤다.이러한 초기 환경을 주고, 모두가 노력하는 공평한 파이 키우기 환경 아래에서라면, 세상은 선형으로 성장 가능할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현재 총 자산량은 45이지만...여기에, 다른 요소는 전부 제끼고, 엥겔계수 하나만을 감안해보자.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자기가 가진 현재 자산중에서 1 (을 생......more

Commented by aa at 2007/12/14 10:33
전자를 진리라 주장하는 사람들보면
답잉벗죠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7/12/14 13:07
타이베리움.. 아.. 타이베리움은 소비개념까지 더하니 더 처철하지만서도.

여튼 멋진글이지말입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7/12/15 01:12
aa // 가장 답답한 사람들이죠. 자기가 가진 것, 그리고 그것을 가지느라 벌인 일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것까지는 뇌를 개조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데, 최소한 노력하면 다 해결된다거나 노력을 안해서 가난하다는 무책임하고 거만한 소리는 아예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됴취네뷔 // 게임보다 현실이 더 처절한 것 같습니다.
졸문에 칭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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